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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적인 계획의 함정, 계획 오류

by 사카77 2025. 9. 11.

누구나 야심 찬 계획을 세우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마감 기한을 놓치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겁니다. 오늘은 이렇게 낙관적인 계획의 함정에 빠지는 '계획 오류'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낙관적인 계획의 함정, 계획 오류
낙관적인 계획의 함정, 계획 오류

 

계획 오류란 무엇인가?: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


‘계획 오류’는 197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두 심리학자에 의해 처음 제시된 개념입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과업을 완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예측할 때, 과거의 경험이나 잠재적인 문제점들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예측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즉, ‘이번에는 다를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사로잡혀 비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결국 실패를 반복하게 되는 인지적 편향입니다.

가장 흔한 사례는 시험공부 계획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루에 3과목씩, 2주면 모든 범위를 완벽하게 끝낼 수 있겠지’라는 거창한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막상 공부를 시작하면 예상치 못한 개념에 발목을 잡히기도 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져 계획이 틀어지기 일쑤입니다. 지난 시험에도 비슷한 이유로 벼락치기를 했던 경험은 까맣게 잊은 채, 이번만큼은 계획대로 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의지나 성실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적 함정에 가깝습니다.

프로젝트 마감 기한 설정 역시 계획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영역입니다. 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우리는 모든 팀원이 순조롭게 협력하고 아무런 돌발 변수도 없을 것이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합니다. 자료 조사는 하루, 기획은 이틀, 제작은 3일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계산하죠. 하지만 실제로는 팀원 간의 의견 충돌, 자료 부족, 예상치 못한 기술적 문제 등 수많은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결국 마감 기한에 쫓겨 밤을 새우거나, 결과물의 완성도를 타협하게 되는 상황에 이릅니다. 이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점과 끝점이 맞닿아 무한히 반복되는 실패의 고리와도 같습니다. 계획 오류는 이처럼 우리의 일상과 업무에 깊숙이 파고들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적입니다.

 

우리는 왜 항상 계획에 실패하는가?: 낙관 편향의 그림자

우리가 이토록 명백한 계획 오류의 함정에 반복해서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심리적 기제가 작동합니다. 첫 번째는 ‘낙관 편향’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는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부정적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실패해도, 나는 성공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계획 수립 단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과거에 비슷한 과업을 수행하며 겪었던 어려움과 실패의 경험은 ‘그때는 특수한 상황이었을 뿐’이라며 애써 외면하고, 미래의 자신은 모든 변수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과대평가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내부 관점’에만 매몰되기 때문입니다. 계획을 세울 때 우리는 자신이 수행할 과업의 구체적인 내용과 단계, 그리고 자신의 능력과 의지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나는 이 부분을 잘 아니까 금방 끝낼 수 있어’, ‘이번에는 정말 집중해서 할 거야’ 와 같은 생각들이 바로 내부 관점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과거의 객관적인 데이터나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경험(외부 관점)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평균적으로 5일이 걸렸다는 통계 데이터가 있더라도, ‘이번 보고서는 내가 잘 아는 주제이니 3일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식입니다. 이처럼 내부 관점은 객관적인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고 계획의 현실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과업을 세부적으로 나눌수록 오히려 오류가 강화되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거대한 프로젝트를 작은 단위로 쪼개서 계획을 세우면 더 정확한 예측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각 단계를 완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예측할 때마다 낙관 편향이 개입하면서, 그 오류들이 누적되어 전체적으로는 훨씬 더 큰 오차를 만들어냅니다. ‘자료 조사 1시간, 개요 작성 30분, 초고 작성 2시간…’처럼 각 단계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예측한 결과, 전체 프로젝트 기간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계획 오류는 단순한 실수가 아닌, 인간의 인지 구조에 깊이 뿌리내린 복합적인 편향의 산물입니다.

 

계획 오류의 덫에서 벗어나는 현실적인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계획 오류라는 피할 수 없는 함정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할까요? 다행히도 이 인지적 편향을 인식하고, 그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몇 가지 효과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적으로 ‘외부 관점’을 채택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우려는 계획과 유사한 과거의 사례를 찾아보고,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객관적인 데이터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프로젝트 기획안을 작성해야 한다면, 과거에 본인이나 동료들이 비슷한 기획안을 작성했을 때 평균적으로 소요된 시간을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만약 과거 데이터가 없다면, 경험이 풍부한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선배님,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보통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셨나요? 어떤 변수들을 고려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은 자신의 ‘내부 관점’이 가진 맹점을 보완해 줄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이를 ‘참조 집단 예측’이라고도 부르는데,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 대신 유사한 사례들의 통계적 분포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여 계획의 정확도를 높이는 기법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사전 부검’을 실시하는 것입니다. 이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팀원들과 함께 ‘이 프로젝트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가정한 뒤 그 원인을 역으로 추적해 보는 사고 훈련입니다. 예를 들어, “시험공부 계획이 처참하게 실패했다. 왜일까?”라고 자문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보다 특정 과목의 난이도가 높았다’, ‘갑작스러운 약속이 생겼다’, ‘예상치 못한 과제가 나왔다’ 등 잠재적인 위험 요소들을 미리 식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장애물들을 미리 인지하면, 계획을 세울 때부터 이에 대비한 완충 시간(buffer time)을 포함시키는 등 훨씬 더 현실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계획은 한 번에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이라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 세운 계획을 성역처럼 여기기보다는, 진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현실에 맞게 유연하게 조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계획 오류는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강력한 인지 편향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함정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고, 외부 관점과 사전 부검 같은 구체적인 전략들을 꾸준히 실천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낙관적인 계획의 배신에 좌절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